피터 김 회장은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양측으로부터 서명이 있는 공문을 다 받은 후 이번엔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하자”고 제안했다. 확실히 못을 박아두자는 의도였다. 선거 운동이 바빴던 쿠치넬리는 그보다 더 큰 정치 이벤트를 바랐다. 라운드 테이블 회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겠다는 것이었다.
맥컬리프는 라운드 테이블 회의 후 기자 회견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맥컬리프는 물론 데이브 마스덴 상원의원 등 민주계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작년 10월9일 애난데일 소재 한식당 한강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처럼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김 회장의 업무 스타일은 결정적인 순간에 큰 도움이 됐다. 지난 1월 일본의 로비가 노골화되면서 워싱턴 포스트 등을 통해 맥컬리프 주지사의 흔들리는 마음이 슬슬 보도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주지사의 보좌관은 공식 서한은 물론 신문, TV 등을 통해 누차 재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주지사가 그런 약속을 했는지 기억이 안난다”며 발을 빼고 있었다. 기가 찰 일이었다. 맥컬리프 주지사를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은 오직 종이 한 장이었다. 그리고 그 종이는 결국 맥컬리프의 ‘항복(?)’ 문서가 됐다.
김 회장은 “캠페인도 열심히 했지만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운도 따랐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만일 맥컬리프가 서명이 담긴 공식 서한을 보내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단순한 예측은 어렵겠지만 지금보다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김 회장은 보고 있다.
어쨌든 주지사의 서명 여부를 놓고 전개된 일련의 사태들은 표를 얻을 수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들의 속성을 다시 한 번 배우게 하는 해프닝이었다.
김 회장이 주지사 후보들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일본 언론의 관심도 뜨거워졌다. 전국적인 지명도가 있는 맥컬리프 후보를 따라다니던 미 언론들이 동해병기 서명에 대한 언급도 하게 되자 일본 언론이 눈치를 챈 것이다. 작년 10월경이었다. 후지, NHK, 교토, 요미우리, 닛본 TV 등 워싱턴에 특파원을 두고 있는 주요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김 회장에게 달려들었다. 인터뷰를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 회장의 생각은 처음부터 확고했다. 일본 언론과는 절대 만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었다. 인터뷰를 해봤자 캠페인에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VA 주하원에서 법안이 최종 통과될 때까지 전화와 이메일 등으로 수많은 요청이 들어왔지만 김 회장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한 번 원칙을 깬 일이 있었다. 그것은 그러나 법안이 통과된 후 많은 외국 기자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일본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한 일이 전부였다. <계속>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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